왕산골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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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골한옥 08-10-24 18:55
만추(晩秋) 조회수 : 4,409 | 추천수 : 0

만산홍엽이라더니,

요즘이 말 그대로 온 산야가 붉게 물들어 있다.

자동차로 꼬불꼬불 돌아 고개 정상에 올라서니,

가을 햇살에 비친 산 능선과 허리에 물감으로 채색 한듯이

노란색, 누런색, 붉은색, 연두색, 고동색,.........................

그림 그리는 사람들도 감히 제대로 표현해 내기가 힘들것 같다.

참 좋을 때다.

 

난 올해 이상한 감성이 생겼다.

가을에 접어 들면서,

예전에 미쳐 느껴보지 못하던 "쓸쓸함"

이게 불쑥 불쑥 가슴에 밀려온다.

낙엽이 두두둑 떨어지고,

바람이 슬쩍 불라치면,

낙엽이 이리딩굴 저리딩굴 구르는 모습이,

웬지 처량해 보인다.

내가 나이가 들어 가나 보다.

가슴 한구석이 뻥~ 뚤리는 느낌이다.

저 딩구는 낙엽은,

봄 부터 여름까지 지 나무에 영양을 공급해 주었는데,

이제 겨울을 맞으려 하니,

지 살라고 나뭇잎을 매정하게 떨궈 뜨리는것 아닐까?

그러나,

비록 비정하게 생각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다음해에 더욱 건강한 나무로 성장하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법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것이,

나도 저 자연의 섭리와 같아서,

이제 황혼으로 가려하는 즈음에,

세상에서 나도 떨어져 나가야만 한다는것이다.

그것 또한,

인간의 삶이다.

 

어제는 모처럼 비가 오락가락 하길래,

처제 내외를 오라고 해서,

고단으로 해서 임계봉산으로 돌아서,

구미정을 거쳐 여량과 구절리를 드라이브 하고 왔다.

오랫만에 깊은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감상했지 싶다.

그런데,

임계 구미정에서 구절리로 가는 임도를 자동차로 한번

트래킹 해 보자는 욕구가 발동하여,

산판차만 다닌다는 비포장 산길을 접어들었는데,

길도 어설프고,

거기다가 길이라는데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산 인지 분간키도 어렵다.

무턱대고 이리저리 쿵덕거리면서 가다보니,

아뿔사!

길이 없다.

희미하게 보이는 길 같은 곳엔,

잡초가 너무 자라 버려서,

앞으로는 도저히 전진할 수가 없다.

시간은 이미 오후 4시가량을 지나고 있고,

가뜩이나 산 중에 밤길은 더욱 빨리 어두어 진다.

이거 까딱 잘못하다가는 깊은 산속에서

자동차와 함께 밤을 지새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밀려오기도 했다.

에라 일단 모르겠다 오던길로 다시 돌아 가다가,

하산길을 찾아보자하고 되 돌아 오는데,

이 깊은 산중에 인적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곳에,

웬 스님 한 분이 밀집모자를 쓰고,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해서,

"스님 여기서 길을 잃어서 그러니 구절리로 내려가는 길이 어디입니까?"

라고 여쭤 봤더니,

이 스님이 빙그레 웃으시면서,

"산 속에 들어 오셨다가 길을 잃으셨군요" 하면서,

"예전에는 여기로 해서 구절리로 가는길이 있었지만,

요즘은 구절리 입구쪽에 공사를 하기 때문에

길이 없어 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던길로 다시 내려가서 여량을 돌아서

구절리로 가시지요"하고

일러 주고는,

또다시 빙그레 웃으시면서 가던길을 가시는게 아닙니까.

나 이거 원 참!

이 산중에 스님은 웬 스님이며,

주변에 사찰이 있긴 하지만,

이 쪽에는 아무것도 없던데 무슨일로

여기를 지나가던  길일까 하고,

한 참을 생각해 보는데,

우리 동서 하는 얘기가 코메디다.

 

우리가 길을 잃고 노심초사하던중에

어떤 스님이 나타나서,

이렇게 저렇게 가면된다고 길을 안내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는데,

나중에 민가에 내려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전 산중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마을주민들이 하는얘기가,

"아니 그 스님은 이미 100여년전에 거기 암자에서 수행하던 스님인데,

이미 입적하시고,

암자도 없어진지가 족히 100여년된것 같은데,

어찌해서 그 스님에게 길을 안내 받았다는것입니까" 하고,

눈이 휘둥그레 해지면서 믿을 수 없다고

의아해 하면서 "세상에 이런일이"감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코메디는 코메디입니다.

산 중에서 내려오면서 무지하게 웃었습니다.

 

더욱 가관인것은 우리집사람이 하는 말씀.

 

우리가 세상을 착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스님이 길을 안내해 준 것이라고,

입맛대로 거든다.

한바탕 더 웃었다.

 

이래저래.

어제는 모처럼의 콧바람에 흥겨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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