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거리고 내리고 있다.
올 가을 내내 한 여름 폭염이 무색할 정도로,
기온이 섭씨 30도 이상을 오르내리고,
따가운 햇살을 내리 쬐이면서,
추석명절이 지나도록 가을은 실종된 듯 하더니,
언제쯤이면 평년의 가을 기온을 되찾을까?
혹시 이러면서 곧 바로 아열대 지역으로
편입되지나 않을까 하고
괜한 걱정도 해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올 여름엔 그냥 비가 자주
지질거리기만 했지,
태풍다운 비바람과 폭풍, 그리고 내리 붓는 폭우,
또한 매스컴을 최근 매년 같이 도배하던
그 놈의“게릴라성 집중호우”
뭐 이런 단어는
올 여름엔 하나같이 실종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처럼 농사짓는 이 들은
한 시름 덜기도 했다.
옛날 어른들께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그 해 농사는 풍년이라 했는데,
난 어르신들 말씀처럼 지난겨울에 그렇게도
눈이 많이 내리더니,
올 농사가 풍년인 모양이다 했는데,
아마도 천재지변이 없었던 것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우리 집 올해 농사 품목은,
콩 재배가 대다수를 이루고,
그 외엔 고추 농사가 그 두 번째이고,
나머지는 조금씩 조금씩 재배한다.
우리 먹는 것은 모두 생산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농사일 중에서 가장 힘든 농사가 고추농사인데,
예전에 부모님들께서 짓던 고추농사 얘기를 좀 해보자.
고추농사는 김치와 된장, 간장, 고추장등 장
류를 많이 먹는
우리민족의 식습관 상,
아주 중요한 농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고추농사가 이랬었다.
이른 봄에 고추씨를 묘판에 부어 놓았다가,
묘목이 한 10cm 쯤 자라면 본 밭에 이식을 하고,
고추 모가 모살이를 하면,
변소에서 인분을 퍼다 가 고추모 옆에다가
쪼끔씩 부어 주면,
고추 모가 무럭무럭 자라고,
옆 가지 자라지 못하게 순 따주고,
고추 밭 이랑에 있는 잡초 제거로,
초여름 삼베 적삼에 물이 줄줄 흐르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얼추 20cm 이상 자라면,
산에 가서 나무 잘라다가 지주대 박고,
노끈으로 한 그루 한 그루 묶어 주고 난 후,
수시로 제초작업을 해 준다.
이렇게 해서 한 여름이 지나갈 즈음에,
고추가 빨갛게 익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아낙네들의 고추 농사가 시작한다.
여름에는 비워두는 빈방에다가,
수확한 빨간 고추를 널어놓고,
한 대 엿새 지나 시들시들해지면,
마당이나 지붕에서 햇볕에 말리기 시작 하는데,
날씨라도 좋아서 바짝 바짝 잘 마르면 좋은 데,
여름날 날씨라도 구질면,
그 더운 여름 날씨에 안방 아랫목에 군불을 지피고,
몇 날 며칠을 그 방에서 고추를 말리면서,
그 옆에서는 식구 모두가 잠을 같이 자거나,
남자들은 아예 방안에서 쫓겨나 뜨락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기운이 조금 덜하거나,
습도가 조금이라도 높을라치면,
고추가 하얗게 변하면서 곰팡이가 생겨,
반절 가까이 내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 말린 고추를 잘 손질해서
방앗간에서 곱게 빻아 와서,
곳간 단지 속에 넣어두면,
우리네 어머니들은,
일 년 농사를 다했다는 뿌듯함이 그 동안의
농사일의 고단함을 상쇄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여기에다가,
예전에 없던 이름도 어려운, 무슨 탄저병이니, 역병이니, 무름 병이니,
무슨무슨 진딧물, 무슨 곰팡이 등
이루 말 할 수 없는 병들이
죽도록 고생해 놓은
고추 농사를 한 방에 전멸 시킨다.
어떤 이는 한두 해도 아니고,
매년 고추농사를 망치자, 정나미가 떨어져서 다시는 고추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하는데,
또 몇 년 지나면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우리 먹는 것이라도 지어 본다고,
또 다시 고추밭을 가꾸기도 하는 것이 농사꾼들의 일상인 것 같다.
올해 우리 집은 고추농사에 약간의 농사방법을
변경해 보았다.
우선 비닐멀칭을 하되 한줄 멀칭이 아니고,
두 줄 동시 멀칭을 하고, 한 두럭에 양 쪽으로
고추모를 이식하고,
멀칭 가장자리 쪽의 경사를 급하게 하고,
이랑에는 폐 현수막을 깔고 돌멩이로 눌러 놓았다.
탄저병의 원인이 산성비에 있다는 설이 있어,
비가 내리면서 멀칭에 떨어진 후 고추 모로
튀지 못하게 하고,
이랑으로 쏟아지는 비는 현수막에 맞고
두럭의 고추 모에 튀지 말라고 해놓은
탄저병 예방 방법이다.
또한 고추가 생육시 많은 영양분 공급을
필요로 하는 만큼,
고추 두럭을 만들 때 생활쓰레기 발효퇴비를 집어넣어,
늦게까지 영양분을 공급하도록 시험해 보았는데,
지금까지 재배과정을 봐서는 일단 긍정적이라고 본다.
물론 올 해도 일부분에서 탄저병 현상이 보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한 번 발병되면,
며칠사이에 전 고추밭으로 전염되던 것이 그 속도가 매우 더디게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수확한 고추가 고맙게도
가을 날씨 화창하고, 기온도 높고,
바람마저 선들 선들 부는 쾌청한 날씨가 지속 된 것하고,
5년이 넘는 우리집사람의 고추 말리는 솜씨의
경험이 잘 조화를 이루어,
말린 고추 품질이 아주 뛰어난 올 고추 농사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고추농사에 비해,
농산물 가격은 한심하기를 이를 데 없다.
고춧가루 600g 에 한 50,000원쯤 되어도 시원치 않은데,
겨우 13,000원에서 16,000원 내외이다.
이거야 말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늘 힘 빠지는 것 중에
하나다.
농산물의 품질이 우수하면,
그 가격 또한 명품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한테 팔기 위해 고추농사를 한 것이 아니고,
우리도 먹고,
가까운 이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 지은 고추농사이니,
내년에는 올해의 재배방법을 교훈 삼고,
더 새로운 재배기술을 접목시켜서,
더 좋은 고추농사를 지어야지 하는 마음에,
금년도 농사일지를 참고해서 내년농사를 지어 볼 마음에
내년 4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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